"자랑스러운 KPC 인" 제1호로 推戴 受賞한 나의 感興
지난 2010.7.01(목) 국가생산성추진기관인 韓國生産性本部(KPC: Korea Productivity Center) 창립 53주년을 맞이하여, 대학교수로서도 停年退任한지 3년이 지나갔고 나의 前 職場인 한국생산성본부(KPC)를 퇴직한지도 35년여가 지난 이즈음에 1970년대 초반 국내 全國 국가공단은 물론 개별 산업계를 건너방 더나들듯이한 KPC 경영개발전문위원(IE부문 수석전문위원)으로 당시 시대적 요청은 국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산업계의 생산성향상, 품질향상 및 원가절감과 전문산업교육을 위하여 , 지금까지 延 3천6백여개 企業體를 지도교육한 실적이 회상된다.
또한 産業工學 專功敎授로 생산성향상, 품질향상 및 원가절감과 산업교육훈련에 대한 학술연구논문 125편 게재발표, 전문저서 42권출판발행 및 전문논단 672편을 전문기관지/잡지에 기고발표를 하는 등, 되돌아보니 나 스스로 젊은 시절에 게으리지 않았고, 퍽이나 바삐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나.
아마도 이런 저런 것을 감안되여 KPC창립 53주년을 맞이하여 휼륭하시고도 멋진 수많은 KPC OB선후배들이 계실터인되도, 나에께 제일 먼저 "자랑스러운 KPC 인" 으로 추대선정하여 賞牌와 副賞을 주신 걸로 여겨진다.
인생말년 老年期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즉 後輩들에게 욕만 안 얻어 먹어도 多行인 판국에 ~~~.
受賞의 感興은 내가 젊었을 때 제11회 "商工의 날"-1984.3.20.에 새마을훈장(근면장)을 敍勳받을 때와 비슷한 感興을 느꼈다.
停年退職 이후 이 나이에 賞받을 만한 일들이 무엇이 있겠소. 그래서 나는 이러한 생각으로 "젊은 시절 勳章을 받은 기분"과 같은 영예로운 感興이라고 하였다.
즉, 나의 슬하에는 아들 셋에 며느리 셋, 그리고 孫子 셋(종완,종운,종우)에 孫女 둘(희경,희지)로서 이들에게 예전 시집오기 전에 시아버지가 또한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우리 할아버지가 퍽이나 부지른 하셨고 당시에도 퍽이나 괜찮으신 분이였구나 하는 "公認 認定牌"를 받은 格이 되어 "老年의 勳章"으로 여겨지는 구려.
나의 前 職場이고 국가 생산성추진기관으로서의 專門家集團인 한국생산성본부(KPC)에서 나를 이렇게 위하여 추대 칭송하여 주시니 그저 감사하고 "나의 청춘시절"을 더욱 보람되게 생각되어 진다.
첨부파일 ***** 상패내용 및 수상장면 사진 4컷.
****************** 2010. 7. 03. KPC 창립 53주년을 맞이하고서. 大山 辛 容 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