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변잡기

紫雲 柳承玉/안나 님의 古稀를 맞이하여.

大山(대산) 2012. 9. 3. 00:49

 

紫雲 柳承玉/안나 님의 古稀를 맞이하여.

오늘 아들, 손자, 며느리와 妻男 내외분과 생질녀 및 그 사위들과 孫子女들이 자리를 함께한 의미 깊은 紫雲 柳承玉/안나 님七旬의 生辰을 맞이하여, 우리 가까운 가족끼리 여기 紫雲/안나 님 古稀宴 祝賀의 자리를 아들/며느리들의 정성으로 마련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우리의 진정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七旬生辰을 맞이하시는 紫雲/안나 님에께 祝賀드릴수 있어 큰 幸福이고 多幸입니다.

안나 님음력 1943년 7월에 대전광역시 인동 出生, 天安에서 중고등학교 時節을 보내시고, 1960년대 초에 大學進學으로 上京하여, 대학시절에 소아과 유승하 院長의 어머니이신 나에게는 後日 妻叔母님이 되신 분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延世大 4학년때 交際, 1965년 11월에 天安에서 結婚하여, 當時 가진 것 없이 적은 月給을 푼푼이 모으고 아껴 점진적으로 우리 辛氏집안을 일으켜나가면서, 결혼 후 10년차까지는 철저한 절약과 저축으로 근면 성실히 가사일을 하면서, 어려운 가운데 1966년도 나의 大學院 修學 뒷바라지와 當時 고향에 계신 할머니의 생활지원 및 자네들 3兄弟(경민, 경석, 경준)'오늘의 자네들'로 건강하게 잘 키워 주었다네.

 

  1975년 5월 막내 경준이가 태어난 1년 後, 이 아버지가 1976년 3월 亞洲大學校 敎授로 轉職한 후 아버지의 活動의 幅이 넓어지면서 아버지/어머니의 "역촌동 전성시대"를 맞이하였고, 그때부터 우리 家庭經濟에도 다소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네.

그리고 長孫 종완이가 태어난지 한달여 후에 나는 大學院長의 補職을 맞게되었지만, 紫雲/안나 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60년대 결혼당시 어려웠든 그 시절의 근검절약과 검소한 생활을 해오신 그 생활패턴대로 근면성실하게 낭비없이 모든 것을 아끼면서 열심히 살아오셨다.

그러한 으로 우리 辛氏家門의 새로운 中興期를 맞이하여, 영산辛氏 上將軍公派 30世아버지世代에 와서 어머니와 함께 집안內外에서 存在價値를 높이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라네.

이 모든 功勞의 原動力은 자네들 3兄弟의 어머니이신 "紫雲 柳承玉/안나 님의 德分"임을 깊히 감사드리며, 7旬 古稀를 맞이하여 萬壽無疆하시고 더더욱 큰 福받으시기를 男便으로 感謝와 함께 깊은 祝賀를 드리는 바입니다.

 

******** 2012. 9. 02. 大山 辛 容 伯 드림.